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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어도 다 아프지만 덜 아픈 손가락도...>


1994년 서울에 사는 평범한 중학생 은희는 집안의 희망인 공부 잘하는 오빠와 일탈을 일삼는 언니 때문에 엄마 아빠의 덜 아픈 손가락이었다.
물론 떡집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 엄마 아빠에게도 그렇게 신나는 일은 아닌듯 집안은 늘 어둡고 눅눅한 기운이 감돈다.
학교도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두 집단에서 또 차별이 일상인 삶을 살아내고 있다. 유일한 단짝 친구도 서로가 가족에게 받는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대해 복수를 할 계획을 이야기하고 그냥 그냥 단순한 재미를 찾고 싶어 하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 은희를 배신하는 가벼운 우정인 줄 깨닫고 실망한다.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은희가 다니는 학원에서 만난 영지 선생님은 그동안 은희가 알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명문대를 다니는 영지선생님은 담배도 피우고 우울한 이야기를 툭툭 던지지만 은희는 그런 영지 선생님이 좋다.
영지 선생님은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라는 물음을 어느 날 던진다. 이 물음은 가족 누구에게도 따스한 관심을 못 받고 자신을 위로할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일이 반복되던 은희와 또 그 시대를 살아가던 또 다른 은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우울과 무력감 속에서도 꼼지락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영지 선생님에게 은희는 자신의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펴서 영지 선생님의 꼼지락 거리는 손가락과 겹쳐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따스함을 전달받고 싶었던 것이다.

<보호자 동의서가 필요해>
평상시 별로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을 못하는 은희는 목에 생긴 혹을 진찰받으러 간 병원에서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째고 상처를 치료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얼마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진단을 받고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제야 은희에게 아무 관심이 없던 엄마 아빠도 은희를 쳐다봐주기 시작한다.
아빠는 수술 후에도 안 좋은 결과가 올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니 말이다.
엄마 아빠 없이도 병원을 가고 수술후 병원에서도 뭐든지 척척 해내는 은희는 수술로 떼어낸 자신의 혹이 어디 있을까 궁금해한다.
은희의 마음만큼 아픔을 숨겨왔을 "혹"에게까지 은희는 어쩌면 애잔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나 보다.

은희의 진정한 보호자는 누구였는지를 생각해보는 장면이다.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 한다.>
1994년의 은희는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이제 막 마음을 나눌 스승이자 벗인 영지 선생님을 잃게 된다.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을 뉴스로 접하고 연이어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또 1997년에는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물론 청소년이었던 은희가 직접 사건 사고의 폐해를 충분히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그 시대를 어렵게 뚫고 지나가는 가장들의 우울감과 경제위기의 불안함은 분명 은희에게도 함께 젖어들었을 시기였으리라.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 권위적인 집안 분위기, 그러한 가족 분위기가 14살 소녀가 가정에서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과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 "벌새"
생물 역사상 가장 작은 조류 벌새, 날갯짓을 초당 55회 정도를 해야 한다는 벌새, 이미 은희의 사랑을 갈구하는 수없는 날개짓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가족들이 무심히 지나쳤을 그 많은 순간들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제 인생도 언젠가 빛이 나겠죠?>

복잡하고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조금씩 벗어나는 듯한 은희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을 보며 묻는다.
자신의 인생도 언젠가 빛이 나겠냐고, 뭐가 뭔지 모르지만 힘들게만 느껴졌던 인생에 은희가 반짝 빛낼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거냐고 묻는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에게 물었지만 많은 어른들이 대답해주어야 한다.
"두다 희뿌연 세상으로 느끼고 살아가지만 그 뿌연 안개가 걷히면서 반짝 빛나는 가슴 뛰는 순간들이 너를 찾아올 거라고, 그리고 그 속에서 맘껏 빛나게 살아가라"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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